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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그리기 혹은 아름다운 인생"                                                          김정락 
 ● 젊은 작가 장파의 그리기 방식은 80년대부터 독일과 서구에 유행처럼 번졌던 신(新)표현주의에 근접한다. 거칠고 가히 폭력적인 그리기 방식으로 우리는 요르그 임멘도르프나 줄리앙 슈나벨 등의 작가들을 연상할 수 있다. 형식과 더불어 내용상에서도 장파는 원초적인,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로 개념 포장될 수 있는 병리학적 현상을 그려낸다. 이것은 마치 80년대의 신 표현주의가 유사 신화나 상징적인 조형언어로 당대의 사회를 - 이것을 시대정신(Zeitgeist)라고도 한다 - 투영하는 것처럼, 장파는 가정 내에서의 은밀한 폭력구조를 환유하는 방식으로 재현해 내고 있다. 재현한다 함은 그가 대상적인 이미지를 그린다는 말과 함께 그것이 지닌 심리적인 자극으로 유도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표면의 장식적인 미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신진작가들과는 달리 나름의 의식적 심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장파가 탐구하는 인간의 본질에는 폭력이란 개념으로 읽혀진다. 그렇다고 작가는 그것을 피가 낭자한 네거티브 스펙터클로 연출하지는 않는다. 그의 그림이 전하는 정서는 오히려 내밀하고 조용하다. 마치 키리코와 같은 초기 초현실주의자들의 침울함을 보는 것처럼 - 그리고 그것은 약간 무섭고 스산하다 - 실존주의적인 측면도 갖추고 있다. 폭력은 언급한 대로 환유적인 방식으로 서사적 구조를 띠고 출연한다. 식물과 동물의 폭력적 관계나 문명과 자연과의 관계 등으로 치환되어 있는 이 대립 항들을 가지고 초조한 화면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대립 항에 내재된 본질적인 갈등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분류가 조장한 폭력에서 비롯된다. 작가의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폭력적 상황에 대해 침묵하거나 강제로 인고해야 그 현실 속에서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가역적으로 역할을 바꾸는 그런 모순된 사회구조를 읽어내고 있다. 그의 그림이 말하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는 탈출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 절망적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간헐적으로 삐쳐 나오는 일탈의 욕망이 그런 감정의 균형을 맞추어주고 있는 듯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비문명적(야만적이라고 할 것을 에둘러 말했다)으로 보이는 원색적 배경이나 불안하게 조성된 구도 그리고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장면에 개입되는 느닷없는 이질감은 아직 더 인생을 경험해야 할 작가에게는 너무나 벅찬 과제를 안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다시 말해, 그의 그림은 능란하기에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그런 경지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그의 그림에서 맡을 수 있는 생생한 폭력의 냄새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겪었을 그리고 지금도 유지되는 심리적 혹은 정신적 고통이 덜어졌으면 하지만, 그것이 현재는 그의 작업의 가장 좋은 동기로서 작동하기에 조금은 더 연장되었으면 싶다. 나의 가학 성이 또 다른 폭력으로 작가를 누르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심의 변명도 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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